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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 바이올린 소나타 5번 ‘봄’-스크랩

단초화 2015. 2. 26. 10:52

Beethoven, Violin Sonata No.5 in F major

'Spring'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5번 ‘봄’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Anne-Sophie Mutter, violin
Lambert Orkis, piano
Theatre des Champs-Elysees, Paris
199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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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e-Sophie Mutter/Lambert Orkis - Beethoven, Violin Sonata No.5
in F major 'Spring'


우리는 일반적으로 베토벤을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로 기억하고 있지만, 그는 또한 바이올리니스트이기도 했다. 베토벤은 젊은 시절에 본의 궁정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연주했는데, 그의 바이올린 연주 솜씨는 그다지 뛰어나지 않았던 모양이다. 베토벤의 열광적인 숭배자였던 페르디난트 리스(Ferdinand Ries, 1784-1838)는 베토벤의 바이올린 연주에 대해 흥미로운 증언을 남겼다. “그는 정말 용감하더군요. 그는 바이올린을 너무 열정적으로 연주한 나머지 엉뚱한 포지션에서 연주하고 있다는 사실도 전혀 깨닫지 못했어요.” 베토벤의 바이올린 연주 솜씨는 피아노에 비해 그다지 훌륭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베토벤이 남긴 바이올린 작품을 통해 그가 바이올린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었고, 얼마나 깊이 사랑했는지를 알 수 있다.

베토벤이 남긴 바이올린 작품들 가운데 총 10곡에 달하는 바이올린 소나타는 그가 바이올린이라는 악기를 독창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10개의 작품들은 베토벤 음악 양식의 변화를 보여주는 하나의 거대한 스펙트럼이라 할 만하며 각각의 작품을 따로 떼어서 보면 그 하나하나가 지닌 견고하고 독창적인 구조에 감탄하게 된다. 그러나 각 소나타들이 강한 개성과 독특한 색채를 지니고 있기에 10곡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관통하는 일관된 흐름을 느끼기는 어렵다. 이러한 다채로움 덕분에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연주에 도전하는 바이올리니스트들은 한 곡 한 곡마다 새로운 음악적 문제에 직면하고 도전해야 한다.

총 10개의 바이올린 소나타, 그 탄생의 배경

뛰어난 독창성을 보여주는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의 탄생 배경은 의외다. 베토벤은 단지 많은 수입을 가져다준다는 이유로 바이올린 소나타를 작곡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당시 각 가정에서 음악을 즐기는 문화가 보편화되고 있었기 때문에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는 인기 있는 장르였다. 1801년 6월, 베토벤은 본에 있는 그의 친구 프란츠 베글러에게 보낸 편지에서 바이올린 소나타를 작곡하는 일이 그에게 얼마나 많은 수입을 보장해주는지를 이렇게 쓰고 있다. “내 작품은 수입이 아주 좋아. 아무래도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주문을 받아도 될 것 같아.”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는 경제적 이유로 탄생하게 되었지만, 순수한 창조적 충동에 의해 작곡되었든 경제적 이유에 의해 작곡되었든 예술적 영감으로 가득한 작품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베토벤으로 하여금 이렇게 훌륭한 바이올린 소나타들을 작곡하도록 만들었던 당시의 상황이 오늘날 바이올린 연주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무척 고마운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당시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에 대한 평가는 그리 좋지 않았다. 대개는 베토벤이 바이올린에 대해 잘 모르고 곡을 쓴 게 아니냐는 식의 평이 많았다. 1799년 당시 가장 권위 있는 음악 전문지인 ‘일반음악신보’(Allgemeine musicalische Zeitung)에서는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작품 12의 세 곡에 대해 혹평하며 베토벤을 “괴상한 전조를 해대며 우리에게 어떠한 재미도 느끼게 해주지 않는 고집쟁이”라고 몰아붙이는가 하면, “그는 심지어 정상적인 화성을 싫어하는 듯하다”고 썼다. 그리고 “만일 베토벤이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자연의 길을 따라 모든 재능과 에너지를 쏟는다면, 그는 분명히 이 악기에 있어 뛰어난 대가임을 입증하는 좋은 음악을 우리에게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조언 아닌 조언까지 덧붙이고 있다. 베토벤은 이런 평가에 대해 무척 상심했지만 결코 붓을 놓지 않았고, 뒤로 갈수록 독창적인 바이올린 음악 어법을 개발해냈다. 결국 베토벤을 혹평했던 비평가들도 바이올린 소나타 4번과 5번에 대해서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Augustin Dumay/Maria João Pires - Beethoven, Violin Sonata No.5 in F major 'Spring'
Augustin Dumay, violin
Maria João Pires, piano
Henry Wood Hall, London
1997.12


달콤하고 유려한 도입부와 신선한 활력이 넘치는 곡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전 10곡을 시기별로 분류해 본다면 모차르트의 영향이 짙게 나타난 초기의 소나타(1, 2, 3번)와 베토벤의 개성이 나타나기 시작한 두 개의 대조적인 소나타(4번, 5번 ‘봄’), 멜로디와 반주 구조를 탈피한 새로운 길을 모색한 세 곡의 소나타(6, 7, 8번), 그리고 후기의 걸작 소나타 두 곡(9번 ‘크로이처’, 10번)으로 나누어볼 수 있겠다. 그중에서도 당대의 비평가들의 아낌없는 찬사를 받았던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5번 ‘봄’은 신선한 활력으로 넘치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그 매력으로 인해 오늘날 바이올린 소나타 가운데 가장 인기가 많은 곡이 되었다. 바이올린 소나타 5번 '봄'은 꽃이 활짝 핀 듯한 화사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곡이다. 그림은 아르침볼도의 <봄>.

‘봄’이라는 별명은 베토벤 자신이 붙인 것은 아니지만 곡의 신선하고 선율적인 느낌에 매우 잘 어울린다. 별명의 기원은 1악장의 도입 주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멜로디는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클레멘티의 작품에서 베낀 것이라는 혐의를 받기도 했을 정도로 베토벤의 선율답지 않게 달콤하고 유려하다. 그러나 주제가 발전되는 방식은 다분히 베토벤 스타일이다.

베토벤은 도입 악장인 알레그로 악장에서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그의 작품 중에서는 드물게 바이올린이 먼저 주제를 제시하는 것으로 설정했다. 이것은 아마도 이 아름다운 제1주제를 더욱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인 듯하다. 유려하고 아름다운 2악장에서는 1악장의 선율이 베일에 싸인 채 신비스럽게 제시된 후 3악장에 이르러 이윽고 리드미컬한 스케르초가 이어진다. 베토벤의 ‘스프링 소나타’도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3번과 마찬가지로 전 4악장 구성을 취하지만 브람스의 소나타처럼 심각하고 장대한 결말을 의도하지는 않는다. 밝은 분위기의 4악장의 론도 주제는 여러 차례 색다른 리듬으로 변장을 하며 새롭게 등장해 변화무쌍한 느낌을 전해준다.

남녘에서부터 봄소식이 올라오고 있다. 며칠 전 주말 뉴스는 섬진강가의 만개한 산수유 꽃을 보여주었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5번 F장조 Op.24는 지금 듣기에 딱인 음악이다. ‘봄’이라는 이름을 베토벤이 직접 붙인 것은 아니지만, 음악의 분위기에 참으로 잘 들어맞는 별칭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봄이 왔어요! 출렁거리는 음악적 쾌감을 느껴보세요
물론 ‘봄’을 표상하는 음악은 이 밖에도 많다. 기억을 한번 더듬어면, ‘내 인생의 클래식 101’에서도 거론된 적이 있었던 비발디의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는 당연히 봄으로 막을 올린다. 슈베르트의 피아노 5중주 ‘송어’에도 봄기운이 샘솟고, 멘델스존의 <무언가>에도 ‘봄의 노래’가 들어 있다. 하이든의 현악 4중주 ‘종달새’도 봄 냄새가 물씬하다. 드뷔시가 색채감 있는 관현악으로 그려낸 ‘봄’도 있다. 또 슈만의 교향곡 1번도 ‘봄’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한데 잠시 언급하자면, 슈만의 ‘봄’은 어딘지 모르게 우울하고 불길하다. 아마 슈만의 기질 탓일 거다. 교향곡 1번을 작곡하는 동안에도 슈만은 조증과 울증을 여러 번 반복했을 테고 그것이 그대로 음악에 투영됐다고 볼 수 있다. ▶베토벤의 ‘스프링 소나타’는 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곡이다.



1악장의 도입 주제는 '봄'의 따뜻한 느낌과 잘 어울린다. 달콤한 멜로디가 마치 봄을 연상시킨다. 그림은 산드로 보티첼리의 <프리마베라>(Primavera 봄, 1478).

모차르트적 기풍과 베토벤적 개성이 함께 어우러지다

하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베토벤적 개성이 서서히 꿈틀거림을 감지할 수 있다. 앞서 작곡한 바이올린 소나타 1, 2, 3번이 모차르트의 영향을 짙게 드러내고 있는 것에 견주자면, 4번과 5번은 그 영향권에서 꽤 벗어나 있는 장면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5번 ‘봄’에는 모차르트적 기풍과 베토벤적 개성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5번 ‘봄’은 듣기에 편안하고 아름답다는 측면(고전적 기품)과 더불어, 베토벤 특유의 변화무쌍함, 듣는 이의 입장에서 얘기하자면 ‘출렁거리는 음악적 쾌감’을 동시에 전해준다. 물론 우리가 베토벤이라는 음악가를 통해서 보다 낭만적으로 확장된 드라마를 맛보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하겠다. 그것은 적어도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 이후에나 가능한 일이다.

1악장: 알레그로

오늘 우리가 베토벤의 ‘봄’을 들으면서 기억해야 하는 것은, 봉두난발에 광기어린 눈빛으로 표상되는 베토벤이 이렇게 달콤하고 따사로운 곡도 썼다는 사실이다. 바이올린으로 문을 여는 1악장의 첫 번째 주제는 매우 청명하고 상쾌하다. ‘정말 베토벤의 음악일까?’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달콤한 선율이다. 피아노는 밑에서 바이올린을 조용히 받쳐주다가 잠시 후 위로 도약한다. 그렇게 서로 간에 위치를 바꿔 가며 주거니 받거니 하는 연주가 펼쳐진다. 얼었던 시냇물이 풀려 졸졸 흘러가는 느낌, 들판의 나무들이 서서히 기지개를 켜는 듯한 분위기를 전해준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긴장감이 점점 고조되면서 베토벤적 개성을 드러낸다.

2악장: 아다지오 몰토 에스프레시보

이어서 느리게 흘러가는 2악장은 피아노가 먼저 문을 연다. 바이올린이 그 위에 살며시 얹히면서 참으로 아름다운 2중주가 펼쳐진다. 그러다가 다시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위치를 바꾼다. 바이올린이 노래하고 피아노가 밑에서 반주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주고받는 대화에 집중하면서 2악장을 들어보시기 바란다. 한쪽이 노래하면 한쪽이 슬쩍 뒤로 물러서고, 그러다가 다시 위치를 바꾸는 장면을 반복한다요. 봄날의 아지랑이를 바라보면서 뭔가 생각에 빠져들고 있는 모습이다. ‘추억’이나 ‘회상’ 같은 단어를 연상하게 만든다. 나는 이 곡의 2악장을 들을 때마다, 헤어졌던 친구나 연인이 노년에 이르러 재회하는 장면, 산등성이에 나란히 앉아 ‘옛날’을 회상하는 장면을 연상하곤 한다.

3악장: 스케르초. 알레그로 몰토

3악장은 빠른 템포의 스케르초 악장이다. 피아노가 경쾌한 8마디를 연주하면서 시작한다. 곧이어 바이올린이 합세한다. 이어서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마치 술래잡기를 하듯이, 피아노가 깡총깡총 달려가고 바이올린이 그 뒤를 깔깔대며 쫓아가는 분위기의 연주가 펼쳐진다. 그야말로 ‘스케르초’라는 이름에 걸맞게 익살스러운 악장이다.

4악장: 론도.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

1분이 조금 넘는 짧은 스케르초가 끝나고 이어지는 4악장은 같은 주제를 여러 번 반복하는 론도(Rondo) 악장이다. 피아노가 먼저, 이어서 바이올린이 첫 주제를 연주한다. 이 주제는 4악장에서 네 차례 반복된다. 물론 단조의 두 번째 주제, 당김음을 사용하는 세 번째 주제도 등장하지만, 가장 많이 반복되는 첫 번째 주제에 귀를 기울이면서 마지막 악장을 들어보시기 바란다. 5번 ‘봄’과 더불어 가장 많이 사랑받는 9번 ‘크로이처’는 다음 기회에 같이 듣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