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cques Loussier Trio - Gnossienne No.1
Jacques Loussier Trio - Gnossienne No.2
Jacques Loussier Trio - Gnossienne No.3
Jacques Loussier Trio - Gnossienne No.4
Jacques Loussier Trio - Gnossienne No.5
Jacques Loussier Trio
1934년 프랑스 태생인 자크 루시에는 어려서부터 파리 음악원 장학생으로 클래식 피아노를 익혔다. 클래식을 공부하던 그는 점차 재즈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Play Bach"라는 트리오를 조직, 바하의 곡들을 재즈로 편곡, 연주하며 이내 유럽의 대중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는다. 80년대에 들어서는 니스 근교에 자신의 스튜디오를 설립하여 바하의 사운드에 보다 다양하고 근원적인 접근을 가지기도 한다. 물론 그 전에도 재즈와 클래식의 만남은 조금이나마 재즈가 발전되어온 과정에서 엿보여왔던게 사실이었으나, 보다 본격적인 차원에서 논의가 되어질 정도의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던 건 바로 퓨전 재즈의 도약 시기인 이때였다.
프랑스에서 스윙글 싱어즈를 비롯한 자크 루시에가 바하의 곡들을 재즈의 감각으로 재해석 해내고, 뒤이어 많은 뮤지션들이 클래식을 재즈 특유의 스윙감과 임프로바이제이션을 동원해 나름대로 풍성하고도, 재기발랄한 감각으로 다양한 스펙트럼 현상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아마도 꾸준히 클래식을 자신의 소신껏 - 대중적 흐름에 맡기지 않고 나름대로 - 재 해석하고 재창조해내고자 했던 뮤지션은 자크 루시에 트리오가 아닐까 싶다. 다른 뮤지션들이 그 당시 클래식의 부분 인용이라든지, 샘플링 그리고 인트로에 해당되는 연주에 풍부한 애드립을 덧붙인 곡들로 어설프게 재즈로 환원시키고자 했다면, 자크 루시에 트리오는 바하의 전곡, 전 악장을 재즈 트리오 형식으로 편곡, 다양하고 독창적으로 소화해내고자 시도했다. 물론, 이것은 피아노를 맡은 자크 루시에와 더블 베이스의 피에르 미셀로, 드러머인 크리스티앙 기로스의 놀랄만큼의 완벽한 호흡과 조화가 있었기뿐만 아니라 그들 자체가 클래식의 교육을 받았던 재원이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들은 바하의 곡들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소화해내 곡 자체의 스윙감과 그루브함이 필요한 요소들을 찾아 나갔으며 이렇게 분석되어진 바하의 곡들은 단순히 재즈적 색채가 덧입혀진 클래식의 모습을 가진 사운드가 아닌 클래식의 감수성 아래에서 완벽하게 재즈로 이식된 클래식의 변환된 모습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프랑스의 작곡가이자 파아니스트인 에릭 사티는 1866년 5월 17일 옹플뢰르에서 태어났다. 4살 때 번역가인 아버지가 파리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그곳으로 이주한 사티는 몇 년 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동생 콘라드와 함께 다시 옹플뢰르로 돌아가 조부모와 함께 살게 되었다. 이후 1878년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형제는 다시 파리로 돌아가 재혼한 아버지와 살았다. 1879년 파리 음악원에 입학한 사티는 교사들에게서 재능이 없다는 평가를 들어야 했고, 학교에서 나와 2년 반 동안 고향에 돌아가 있다가 다시 재입학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는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다는 평을 듣지 못했고, 그러던 중 입영장을 받게 되었지만 군 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해 탈영을 하고 말았다. 1887년 고향을 떠나 몽마르트르에서 살기 시작한 사티는 Patrice Contamine라는 시인과 친교를 맞으면서 아버지에 의해 첫 작품을 출판하게 되었다. 1890년에는 좀 더 작은 방으로 이사한 그는 다음 해인 1891년 장미십자단에서 작곡과 카펠마이스터를 맡게 되어 이 때 'Salut Drapeau!', 'Le Fils des étoiles', 'Sonneries de la Rose+Croix' 등의 작품을 만들었다. 1892년부터는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언어로 작품을 쓰기 시작한 사티는 장미십자단을 떠나 친구인 르 따뚜와 함께 발레작 '유스푸드'를 쓰기 시작했고, 동료들은 그를 위해 독특한 홍보 책자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1893년에는 화가이자 그림모델인 수잔 발라동과 사랑에 빠지게 되어 청혼을 했으나 거절당했지만 수잔이 사티가 살던 곳의 옆방으로 이사를 하면서 더욱 깊은 사랑을 느껴 그녀에 관한 글을 쓰거나 'Danses Gothiques'라는 작품을 쓰기도 했다. 작곡 이외에도 많은 활동을 펼친 사티는 가명을 사용해 다다이즘 전문지인 '391'이나 대중문화잡지인 ' Vanity Fair' 등에 많은 글을 투고하기도 했다. 20세기 파리의 아방가르드 작곡가들 중에서도 상당히 독특한 인물로 꼽히며, 20세기 예술운동의 선구자로도 불린 사티는 1926년 6월1일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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