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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샹송 - 음유시인의 낭만과 시정(詩情)

단초화 2014. 7. 24. 10:11

음유시인의 낭만과 시정(詩情)

프랑스의 샹송

샹송의 역사는 중세의 음유시인 트루바두르(troubadour)와 트루베르(trouvère)가 십자군 영웅들의 이야기나 세속적인 사랑을 노래했던 11~13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6~17세기에 이르러 샹송은 확연하게 서민적인 색채를 지니게 된다. 당시 그 중심 무대가 된 곳은 다름 아닌 파리였다. 그리고 센 강의 유명한 다리 중의 하나인 퐁 뇌프(Pont Neuf)는 거리의 가수들이 노래하던 샹송의 명소였다. 그림은 르누아르의 <퐁 뇌프 다리>. 1872년.

 

Juliette Greco - Sous le ciel de Paris (파리의 하늘 밑)

예술가들의 천국으로 불리는 프랑스. 폭넓고 깊이 있는 예술 문화의 전통이 이어져 온 프랑스의 아름다운 문화유산 중 하나로 그들의 노래 샹송(chanson)을 빼놓을 수 없다. 샹송은 독특한 개성과 멋을 지닌 세상의 모든 음악들 가운데 예술적인 우아함과 대중적인 기호를 동시에 갖춘 것으로 손꼽을 수 있다. “프랑스 사람들처럼 아름다운 노래를 가진 국민은 없다.”는 볼테르의 말처럼 샹송은 프랑스 사람들에게 커다란 자부심을 안겨주었고, 비영어권 지역 대중음악의 중심에 자리해 왔다. 파리 시내를 흐르는 센 강과 폭이 넓지 않은 강의 양쪽을 연결하는 아담하면서도 예술적인 운치를 풍기는 다리들. 그 정경만큼이나 우아한 분위기와 프랑스어가 지닌 언어 자체의 아름다움, 그리고 ‘예술적’이라는 말로 대변되는 프랑스라는 나라의 이미지와 함께 샹송은 오랜 세월 동안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아 왔다.

몽마르트르 언덕의 테르트르 광장

샹송은 월드 뮤직인가?

흔히 프랑스를 월드 뮤직의 메카로 부른다. 외관상으로는 프랑스 음악시장의 상황과 연결되어 있는 말이다. 아프리카를 비롯한 많은 나라의 뮤지션들이 프랑스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고, 세계 곳곳의 음악들이 음반으로 소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의 본질은 프랑스의 톨레랑스(tolérance) 정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다른 문화를 존중함으로써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자신들의 문화도 인정받는다는 논리가 밑바탕에 깔려 있기에 가능한 일인 것이다. 어쨌든 프랑스의 적지 않은 음반 레이블들은 세계 구석구석의 음악들을 수집하거나 직접 리코딩해서 자신들의 발매 리스트에 올려놓고 있다.

“프랑스의 샹송은 월드 뮤직인가?”라는 질문을 자주 받게 된다. 이에 대한 답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그 답과 샹송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월드 뮤직이라는 용어를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한때 음악 애호가들 사이에서 ‘제3세계 음악’이라는 이름으로 통하기도 했던 월드 뮤직은 이제 하나의 음악 장르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월드 뮤직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명쾌한 답을 하기는 어렵다. 그 개념과 장르의 범위를 구분 짓는 기준이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외에서는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도 월드 뮤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조차 의견이 엇갈리기도 한다. 다만 이 음악이 본질적으로 지닌 남다른 특징들은 이제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 가고 있다.

현재 우리가 월드 뮤직이라고 지칭하는 음악들은 한 나라나 지역, 또는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정서가 고유한 음악적 전통을 바탕으로 표현된 것이다. 여기에 현대화되고 대중화된 음악적인 표현 방법이 더해지기도 한다. 이 말 속에는 음악으로 표현된 부분과 함께 그 이면의 배경도 간과해서는 안 되는 음악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이 지면을 통해 앞에서 소개한 다른 나라의 음악에서 보았듯이 듣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역사와 문화를 함께 살펴봐야 좀 더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는 음악인 것이다.

한편, 언어를 기준으로 분류하는 다소 광범위한 기준도 있지만, 이는 비영어권의 모든 대중음악을 월드 뮤직에 포함시키는 다분히 상업적인 의도가 담길 수도 있다. 영미의 팝 음악을 그대로 답습하는 각국의 대중음악들을 월드 뮤직이라 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의 대중음악에서 한국의 월드 뮤직이라 할 만한 음악을 찾아보기 힘든 실태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언어에 의한 분류는 비영어권의 음악이라는 것이 가장 큰 기준이지만, 켈트 문화권인 영국 지역과 북미 인디언들의 음악은 영어 가사를 가진 노래라 할지라도 고유의 전통과 정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면 월드 뮤직으로 이해해야 할 부분인 것이다.

예술의 다리(Le Pont des Arts) 야경.

다시 “샹송은 월드 뮤직인가?”라는 질문으로 돌아와 이번엔 샹송이라는 말에 대한 기준을 세울 필요가 있다. 샹송(chanson)은 ‘노래’라는 뜻의 프랑스어로 ‘프랑스의 대중음악’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글에서 말하는 샹송을 이러한 사전적인 의미의 단순한 기준으로만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샹송은 중세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 속에서 프랑스 사람들의 삶과 함께해 왔다. 또한 시적인 언어와 그 음률을 중시하는 전통을 만들어 가며 발전해 왔고, 20세기 중반 이후까지 그 전통을 바탕으로 한 음악들이 프랑스를 대표하는 음악 ‘샹송’으로 사랑받았다. 그 속에 프랑스 사람들만의 정서적 표현이 담겨 있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전통이 담긴 고유한 멋을 유지해 오던 샹송도 1960~70년대 지구촌 곳곳에 불어 닥쳤던 록 음악의 열풍에 커다란 영향을 받았고, 이후 프랑스 대중음악은 언어적인 뉘앙스만 다를 뿐 영미의 팝 음악과 다름없는 음악들이 주를 이루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를 프렌치 팝이라는 말로 샹송과 구분하기도 한다. 물론 이 글에서 말하는 샹송과 프렌치 팝의 교집합에 해당되는 음악도 많지만, 프랑스어로 만들어진 R&B나 힙합을 샹송이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프랑스를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의 무대를 열광하게 만든 우리 아이돌 그룹의 노래를 대한민국의 월드 뮤직이 아닌 K-Pop으로 표현하는 것과 같은 맥락인 것이다. 사전적인 의미의 샹송이 아닌 고유한 멋과 전통을 바탕으로 하는 샹송이라면 분명 월드 뮤직에 포함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Charles Aznavour - Concert au Palais des Congrès 2004

2004년 5월 22일 파리 의사당에서 있은 샤를 아즈나부르(1924~ ) 80세 생일 기념공연입니다. 이 해설에서는 샤를 아즈나부르에 대한 언급이 없는데, 라라와복래가 무척 좋아하는 샹송 가수이자 배우입니다.

Charles Aznavour - Mourir d'aimer (죽도록 사랑해)

음유시인의 노래에서 시작된 샹송

샹송의 역사는 중세의 음유시인 트루바두르(troubadour)와 트루베르(trouvère)가 십자군 영웅들의 이야기나 세속적인 사랑을 노래했던 11~13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야기체인 쿠플레(couplet)와 반복되는 후렴구인 르프렝(refrain)으로 이루어지는 샹송의 원칙적인 형식도 이 시기에 만들어졌으며, 시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샹송의 근본적인 특성 또한 이때부터 갖추게 되었다. 시와 선율, 그리고 역사가 샹송에 담기기 시작한 것이다. 단선율의 가곡이었던 음유시인들의 노래는 14~15세기를 지나며 기욤 드 마쇼(Guillaume de Machaut), 질 뱅슈아(Gilles de Binchois) 등의 작곡가들에 의해 다성 음악의 기법에 의한 정형이 확립되었다. 중세 음유시인의 동상.

16~17세기에 이르러 샹송은 확연하게 서민적인 색채를 지니게 된다. 당시 그 중심 무대가 된 곳은 다름 아닌 파리였다. 그리고 센 강의 유명한 다리 중의 하나인 퐁 뇌프(Pont Neuf)는 거리의 가수들이 노래하던 샹송의 명소였다고 한다. 그들은 노래를 직업으로 삼은 최초의 가수였다. 정부의 고관과 귀족을 풍자하고 서민들의 감정을 담아 노래했다. 이처럼 사회적인 풍자가 담긴 노래를 샹소네(Chansonner)라고 했고, 그 작자 겸 가수를 샹소니에(Chansonnier)라고 불렀다. 샹소니에는 풍자가 담긴 자작 가사를 재치 있게 노래했고, 샹송 가수들 중에서도 특별히 우대되었다.

1890년의 파리.

인기 있는 스타가 탄생하고 창법과 노래의 형식이 연구되는 등 샹송이 현대적인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때는 벨 에포크(La Belle Époque, 좋은 시절)로 불리는 1900년 전후의 시기였다. 이 시기에 파리는 과거에 볼 수 없었던 풍요와 평화를 누렸고, 예술과 문화가 번창했다. 프랑스 예술이 카페 문화 속에서 꽃을 피운 것처럼 샹송 또한 예술 집합소였던 카페에서 현대적인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시인, 음악가, 화가, 배우들이 모여들고 나중에는 일반 대중들에게도 친숙해진 카보(Caveau), 카바레(Cavaret), 카페 콩세르(Cafe Concert)와 같은 공간에서 두드러진 발전을 거듭해 갔다. <샹송 창법>이라는 책을 저술하며 근대 샹송의 창법을 확립한 이베트 길베르(Yvette Guilbert)는 벨 에포크를 대표하는 카페 콩세르의 대스타로 유명했다.

1차 세계대전에 의해 벨 에포크가 막을 내리고 샹송은 카페에서 보다 큰 규모의 뮤직 홀로 그 무대를 옮겨 갔다. 일명 ‘Rolling Twenty’라고 불리는 동요(動搖)의 시대이자 제2의 벨 에포크로 불리기도 하는 1920년대에 샹송은 물랭 루즈(Moulin Rouge)와 같은 뮤직홀에서 본격적인 전성시대를 열어 나갔다. ‘물랭 루즈의 여왕’으로 불렸던 미스탕게트(Mistinguett), 미국 할렘의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다 프랑스로 건너온 흑인 혈통의 가수 조세핀 베이커(Josephin Baker), 나중에 영화배우로도 큰 인기를 얻게 되는 모리스 슈발리에(Morice Cheval‍ier) 등 현대 샹송 역사의 전설적인 인물들이 바로 이 시대의 스타들이었다.

물랭 루즈(Moulin Rouge)

1930년대를 전후한 시기에는 샹송이 대중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서는 또 한 번의 커다란 전기가 마련되었다. 라디오 방송과 레코드의 보급은 샹송이 프랑스를 대표하는 대중문화로서의 커다란 파급력을 지닐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였다. 또한 무성 영화와 유성 영화의 중간 단계라 할 수 있는 토키 영화는 샹송의 커다란 공급원이 되었다. 많은 가수들이 배우로서도 활약하던 시기였다. 토키 영화의 주제가로 대성공을 거둔 대표적인 가수로 티노 로시(Tino Rossi)가 있다. 영화 <마리넬라(Marinella)>의 주제곡으로 유명한 그는 코르시카 출신으로 ‘샹송계의 나폴레옹’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커다란 인기를 얻었다.

여러 리메이크 버전으로 지금도 사랑받고 있는 ‘La Mer(바다)’를 비롯해 ‘Que reste-t-il de nos amours?(우리 사랑에 무엇이 남았나요?)’, ‘Douce France(정겨운 프랑스)’ 등 수많은 샹송 명곡을 남긴 샤를 트레네(Charles Trenet)는 재즈의 요소를 도입해 샹송의 음악적인 발전을 가져왔던 인물이다. 이 시기에 활동했던 또 한 명의 잊을 수 없는 명인으로 장 사블롱(Jean Sablon)이라는 인물이 있다. 1936년 샹송 무대에서 처음으로 마이크를 사용하며 당시 기계의 도움으로 목소리를 확대하는 것을 가수의 수치로 여기던 청중들을 놀라게 한 장본인이었다. 샹송의 고전적인 명곡 ‘Vous qui passez sans me voir(나를 보지 않고 떠나간 당신)’과 ‘J'attendrai(기다리겠어요)’의 주인공이기도 한 그는 미국의 크루너적인 창법을 도입해 ‘프랑스의 빙 크로스비’로 불리며 부드러운 매력을 선보였다.

Edith Piaf - La vie en rose (장밋빛 인생)

 

Édith Piaf - Ne me quitte pas (떠나지 마세요). 영어 제목은 If you go away.

에디트 피아프와 함께 한 샹송의 황금기

샹송의 여왕 에디트 피아프(Édith Piaf)가 세상을 떠난 지 올해로 50년이 되었다. 불행한 환경 속에 태어나 파리의 거리를 떠돌다 세계의 가슴을 흔든 최고의 가수로 변신해 ‘영원한 파리의 연인’으로 기억되는 에디트 피아프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술과 약물에 찌들어 마감한 짧은 인생의 마지막은 비극적이었지만, 노래에 담아 놓은 감동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며 회자되고 있다. 또한 세기의 사랑으로 기억되는 복싱 챔피언 마르셀(Marcel Cerdan)과의 운명적인 만남을 비롯해 이브 몽탕(Yves Montand), 조르주 무스타키(Georges Moustaki) 등 그녀가 샹송계로 이끌어 사랑하며 지나쳤던 많은 남자들과의 사랑이야기도 남겨 놓았다. 에디트 피아프.

1930년대에 다양한 음악적 성과들과 함께 다져진 현대적인 샹송은 2차 세계대전 중 에디트 피아프가 등장하면서 1950년대를 지나는 동안 오랜 역사를 통해 쌓인 빛나는 전통과 매력을 드러내며 최고의 황금기를 누렸다. 자크 프레베르(Jacques Prévert)의 시에 곡을 붙인 ‘Les feuilles mortes(고엽)’의 주인공 이브 몽탕을 비롯해 사색적인 분위기로 샹송의 멋을 전했던 줄리에트 그레코(Juliette Greco)의 음악들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왼쪽) 이브 몽탕(Yves Montand). (오른쪽) 조르주 무스타키(Georges Moustaki)

 

Yves Montand - Les feuilles mortes (고엽)

George Moustaki - Ma liberté (나의 자유)

짙은 문학성과 예술적 깊이가 담긴 자작곡들을 남긴 자크 브렐(Jacques Brel)과 조르주 브라상(Georges Brassens, 그의 고향에서는 브라센스로 발음)은 샹소니에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았던 거장들이었다. ‘고독한 음유시인’으로 세계 음악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 오다 2013년 세상을 떠난 조르주 무스타키나 실존주의와 염세주의를 넘나들며 철학적인 가사로 깊이 있는 노래들을 남긴 레오 페레(Léo Ferré) 역시 프랑스 샹송의 전통적인 면모를 유지했던 잊지 못할 샹송 거장으로 손꼽을 만하다.

Léo Ferré - Avec le temps (세월과 더불어)

 

추천앨범

Chante Jacques Prévert

아티스트: 이브 몽탕(Yves Montand)

발매일 1962

시인 자크 프레베르와 헝가리 출신의 작곡가 조제프 코스마(József Kozma)가 작업한 명곡들을 노래한 이브 몽탕의 1962년 앨범. 심오한 시정(詩情)을 담은 명곡 ‘Les Feuilles Mortes(고엽)’을 비롯해 시문학과 결합한 샹송의 전통적인 멋을 이브 몽탕의 깊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통해 만날 수 있는 작품이다.

Barbara Chante Barbara

아티스트: 바르바라(Barbara)

발매일 1998

줄리에트 그레코와 비견할 만한 목소리를 지닌 여성 가수 바르바라는 조르주 브라상과 자크 브렐의 영향을 받아 샹송의 전통을 지적인 분위기로 표현했던 인물이다. 아버지의 죽음을 노래한 ‘Nantes(낭트)’는 지적인 시정(詩情)이 담긴 바르바라 최고의 명곡으로 손꼽힌다.

Chante Aragon

아티스트: 장 페라(Jean Ferrat)

발매일 1971

장 페라는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뛰어난 작곡 실력과 깊이 있는 목소리로 시적인 분위기의 많은 명곡들을 남긴 가수다. 그의 최고작으로 손꼽히는 이 앨범은 시인 루이 아라공(Luis Aragon)의 12편의 시를 노래로 만든 곡들을 담고 있다. ‘Un Jour un Jour(하루하루)’, ‘Les Poètes(시인)’ 등 담백한 아름다움이 담긴 곡들을 수록하고 있다.

Léo Ferré

아티스트: 레오 페레(Léo Ferré)

발매일 1969

레오 페레 최고의 명곡으로 손꼽히는 ‘Avec le Temps(시간이 흐르면)’이 담긴 같은 제목의 1972년 앨범도 첫 손에 꼽을 만한 작품이지만, 레오 페레의 부드러움을 보여주는 이 앨범 또한 추천할 만하다. ‘La Nuit(밤)’, ‘A Toi(그대)’ 등 따스함이 깃든 레오 페레의 노래를 만날 수 있다.

Tarentelle

아티스트: 이브 뒤테이(Yves Duteil)

발매일 2000

싱어 송 라이터 이브 뒤테이는 서정적인 샹송을 노래하며 프랑스어를 가장 아름답게 표현하는 음유시인으로 샹송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세상에 태어난 자신의 딸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명곡 ‘Prendre un Enfant(아이의 손을 잡고)’를 수록하고 있다.

 

황윤기(음악 칼럼니스트) 독립 음반사 Ales Music에 재직하며 월드뮤직 음반을 기획 제작했고, 다수의 음악 전문지에서 필자로 활동했다. KBS Classic FM, PBC, CBS, TBN, TBS 등 다수의 라디오 방송음악 프로그램에서 진행, 출연, 작가로 활동하면서 월드뮤직을 전문적으로 소개해 왔다. 현재 국악방송 ‘황윤기의 세계음악 여행’ DJ로 활동 중이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취미의 발견>월드 뮤직 2013.10.03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232&contents_id=37709&leafId=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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